안녕하세요, 책 읽는 제제입니다. 😊
오늘 소개할 책은 알베르 까뮈의 대표작, <이방인>이에요.
‘부조리 철학’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발표된 이후 꾸준히 사랑받으며 고전의 반열에 올랐죠.
짧은 분량 속에서도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오늘은 이 책이 왜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알아보아요.
항목 | 내용 |
---|---|
제목 | 이방인 |
작가 | 알베르 까뮈 |
장르 | 철학 소설, 고전 문학 |
출판사 | 문예출판사 |

<이방인> 줄거리
1부: 뫼르소의 이야기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무감각한 태도를 보이며, 이후 자신의 삶을 큰 변화 없이 이어갑니다.
뫼르소는 마리와 연애를 시작하고, 이웃인 레이몽과 가까워집니다.
레이몽은 자신의 전 여자친구에게 복수를 계획하며 뫼르소를 끌어들이고, 그 과정에서 뫼르소는 레이몽과 함께 갈등에 휘말립니다.
결국 해변에서 벌어진 아랍인들과의 충돌 끝에, 뫼르소는 우발적으로 한 아랍인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맙니다.
2부: 살인 혐의로 체포된 뫼르소는 재판 과정에서 사회적 고립감을 강하게 느낍니다.
법정에서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태도와 장례식장에서의 행동이 도마에 오르며, 그의 도덕성과 인간성에 의문이 제기됩니다.
뫼르소는 자신을 변호하거나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결국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세상의 부조리함을 깨닫고, 이를 받아들이는 결말에 이릅니다.

<이방인> 문장수집
뫼르소의 무감정, 철학적 시작점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이 문장은 <이방인>을 읽지 않은 사람도 들어봤을 만큼 유명하죠.
짧은 한 문장이지만, 뫼르소라는 주인공의 성격과 책의 핵심 메시지를 단번에 보여주는 문장입니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중대한 사건에조차 무심하게 반응하며, 인간이 느끼는 ‘의미’라는 것 자체를 낯설게 만듭니다.
그의 태도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부조리 철학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삶의 사건들이 정말로 중요한지, 혹은 우리가 그저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죠.
이 문장을 읽고 나면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는 내 삶의 사건과 감정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것이 정말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걸까?
<이방인>이 던지는 철학적 물음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한 번 읽고 잊히는 문장이 아닌, 계속해서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강렬함.
이 문장이 왜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는지 이해가 되지 않나요?

뫼르소의 내면, 우리가 놓쳤던 감정들
나는 이미 나의 것이 아닌 삶, 그러나 거기서 내가 지극히 빈약하나마 집요한 기쁨을 얻었던 삶에 대한 추억에 사로잡혔다.
뫼르소는 감옥에 갇힌 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비록 희미하지만 분명 존재했던 기쁨의 순간들을 떠올립니다.
여름의 냄새, 마리의 웃음, 하늘의 색감 같은 평범한 것들에서조차 작은 행복을 느꼈던 기억들.
그가 마리와의 관계에서 보여준 무심한 태도나, 감정적으로 담백한 반응은 마치 그가 삶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 뫼르소 역시 나름대로의 감정을 지니고 있었어요.
단지 그것이 사회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감정이나 행동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판단하곤 합니다.
뫼르소가 감정적으로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감정이 메마른 사람’으로 단정 짓고, 그의 존재 자체를 평가해 버리는 일이 과연 옳은 걸까요?
이 장면은 독자로 하여금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가 표현하지 않은 감정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무작정 비난하는 태도가 오히려 부조리하지는 않았을까요?
뫼르소의 삶 속에서 찾아낸 작은 기쁨은 우리가 그의 내면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그도 결국, 우리처럼 ‘사람’이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문장이죠.

세계와 하나가 되는 순간의 완성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세계가 나와 다름없고 형제 같음을 느끼며, 나는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이제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뫼르소는 자신의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오히려 평온함과 행복을 느낍니다.
그는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을 받아들이고, 세상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느낌을 완성이라고 표현합니다.
삶과 죽음, 의미와 부조리 사이에서 홀로 떠돌던 그의 여정이 결국 세계와 조화롭게 연결되는 장면이죠.
이 문장을 읽으면서 저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 <향수>의 주인공이 떠올랐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소유하려다 못해 결국 그를 먹어버리는 장면 말이에요.
그 순간은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주인공이 세상과 완전히 결합되는 순간이기도 하죠.
뫼르소의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이라는 표현도 이런 맥락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세상에서 소외되어 떨어져 있던 그의 삶이, 마지막 순간에 세상과 하나로 결합되는 완성.
그것이 세상의 무관심과도 평화롭게 연결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 같아요.
죽음을 앞둔 뫼르소는 자신이 외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세상을 향해 마지막 바람을 내놓습니다.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이 말은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세상과의 마지막 연결을 갈구하는 뫼르소의 독특한 방식 아닐까요?

세상이 만든 이방인, 뫼르소
처음 <이방인>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뫼르소라는 인물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도 무심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조차 특별히 의욕적이지 않았죠.
책 초반에는 “대체 이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하지만 2부로 넘어가면서, 1부에서 그의 삶과 태도를 통해 그가 왜 ‘이방인’인지 설명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뫼르소는 철저히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춰집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거짓을 말하며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진실을 말하며 재판을 끝내기를 원했죠.
그는 이미 자신을 철저히 배척한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것은 아닐까요?
뫼르소는 세상의 이방인이었을까?
읽는 내내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뫼르소가 세상에서 이방인이 된 걸까요? 아니면 세상이 그를 이방인으로 만든 걸까요?
뫼르소는 자신의 감정을 남들처럼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를 사랑했냐는 질문에 그는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사랑했다”고 대답합니다.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 저는 그도 분명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느꼈어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뫼르소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세상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철저히 고립시키고, 그를 ‘이방인’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과연 누가 진정으로 잘못된 걸까요?
뫼르소는 마지막에 세상의 무관심을 바라보며, 자신도 세상을 향해 무관심해질 수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고, 세상과의 단절 속에서 오히려 안락함을 느꼈습니다.
마지막에 “증오의 함성”을 원했던 것도 자신을 향한 관심이라기보다는, 그 함성 속에 담긴 세상의 무관심이 자신과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요?